14일 아침 호찌민시가 레 티 리엥 문화공원(화흥동)에서 발견된 열사 유해 731구의 추도식과 안장식을 열었다. Thanh Niên은 이들이 1968년 뗏 마우턴 때 전사한 열사라고 썼고, Dân trí는 수습이 넉 달 넘게 이어졌다고 전했다. 팜 티 타인 짜 부총리가 새벽 기도 의식에, 레 민 흥 총리가 추도식과 안장식에 참석했다(Dân trí, VnExpress). 유해를 실은 행렬은 공원에서 호찌민시 열사묘지로 향했고, 예상 경로는 26km였다(Thanh Niên). 시민들은 흰 국화를 들고 길가에 섰는데, 그 가운데 4,000송이는 달랏의 한 부부가 가져와 무료로 나눠 준 것이었다(Thanh Niên, Tuổi Trẻ). Dân trí는 열사 후인 반 꾸옌이 유품으로 신원을 확인한 드문 경우였고 그의 아내가 처음으로 남편의 묘를 찾았다고 적었다.
거의 육십 년 동안 묻혀 있던 유해가 안식처로 돌아간 일은 보기 드문 공동체의 사건이다. 지도부부터 학생, 의료진, 예술인, 길가의 시민까지 함께했다. 꾸옌 씨의 경우처럼 유품에 적힌 정보 한 줄이 가족이 혈육을 되찾을 기회가 될 수 있다.
참배하러 가고 싶다면 호찌민시 열사묘지 주변의 개방 시간과 교통에 관한 시 공지를 확인하자. 이에 관한 공식 공지는 우리에게 아직 없다. 1968년 사이공 일대에서 전사했거나 실종된 가족이 있다면,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을 지방 당국에 문의할 수 있다. 공식 안내는 우리에게 아직 없다.
많은 이가 이를 뒤늦게 갚은 보은의 빚으로 보며, 온 도시가 함께 배웅한 모습은 전쟁의 기억이 아직 가깝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신원 확인은 여전히 어렵다. Dân trí가 꾸옌 씨를 드문 경우라고 불렀으니, 많은 가족이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하거나 혈육의 유해가 어디 있는지 끝내 모를 수 있다.
다음에 지켜볼 것은 731구 가운데 몇 구의 신원이 확인되는지, 시가 신원 감정을 어떻게 이어 가는지다. 이 수치는 두 곳에서 확인하지 못해 어떤 숫자도 적지 않는다.
Thanh Niên, Dân trí, VnExpress, VnEconomy, VietNamNet, Tuổi Trẻ, Lao Động, Tiền Phong (2026년 10월 13~14일)
1968년 뗏 마우턴 때 전사한 열사 유해 731구, 추도식 뒤 호찌민시 열사묘지에 안장… 흰 꽃 든 수천 명이 길가에서 배웅
행사는 14일 아침 레 티 리엥 공원에서 열렸다. 레 민 흥 총리가 참석했고, 전날 밤에는 촛불 추모 프로그램이 있었다.
14일 아침 호찌민시가 화흥(Hòa Hưng)동 레 티 리엥(Lê Thị Riêng) 문화공원에서 발견된 열사 유해 731구의 추도식과 안장식을 열었다. Thanh Niên은 이들이 1968년 뗏 마우턴(Tết Mậu Thân) 때 전사해 거의 육십 년 동안 사이공 한복판에 묻혀 있었다고 썼고, Dân trí는 수습 작업이 넉 달 넘게 이어졌다고 전했다. 새벽에는 팜 티 타인 짜(Phạm Thị Thanh Trà) 부총리가 국방부와 시 인민위원회 지도부와 함께 공원에서 열린 기도 의식에 참석했다(Dân trí). Tuổi Trẻ는 호찌민시 불교 교단도 기도 의식을 올렸다고 적었다. 13일 저녁에는 공연 “보은의 노래(Khúc tri ân)”가 같은 곳에서 촛불 추모를 했다(Dân trí). 레 민 흥(Lê Minh Hưng) 총리가 추도식과 안장식에 참석했다(Dân trí, VnExpress 영어판). 의식이 끝난 뒤 유해를 실은 행렬이 공원에서 호찌민시 열사묘지로 향했다. 앞서 Thanh Niên은 예상 경로가 26km이고 첫 차량 무리가 8시 45분에 출발한다고 보도했다. VnExpress는 수천 명이 이른 아침부터 흰 국화를 들고 길가에 서 있었다고 적었고, Dân trí는 행렬이 공원을 떠날 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많았다고 적었다. 낮이 되자 Thanh Niên은 행렬이 지나간 보응우옌잡(Võ Nguyên Giáp) 거리 보도에 국화 수백 송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전했다.
행사 주변에는 시민들의 아주 구체적인 행동이 있었다. 달랏의 한 부부는 직접 키운 흰 국화 4,000송이를 싣고 300km 넘게 손수 운전해 와 무료로 나눠 줬다(Thanh Niên, Tuổi Trẻ). 한 꽃집 주인은 1,000송이를, 자매 두 사람은 500송이를 내놓았다(Thanh Niên). Dân trí는 응우옌 티 민 카이(Nguyễn Thị Minh Khai) 고등학교 학생들이 디엔비엔푸(Điện Biên Phủ) 거리를 따라 줄지어 서고 흰 가운을 입은 의료진이 헌화했다고 적었다. Lao Động는 인민예술가(NSND) 찐 낌 찌(Trịnh Kim Chi), 후인 랍(Huỳnh Lập), 에모우라 팜(Emoura Phạm)을 비롯한 여러 예술인이 배웅하러 왔다고 적었다. 731이라는 숫자 뒤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Dân trí는 열사 후인 반 꾸옌(Huỳnh Văn Quên)이 드문 경우라고 전했다. 발견된 유품에 신원을 확인할 정보가 충분히 담겨 있었고, 그의 아내가 처음으로 남편의 묘를 찾았다. 이름이 확인된 유해가 몇 구인지에 대한 종합 수치는 우리에게 없으므로, 이 사례로 전체를 짐작하지 않는다. 같은 날 Thanh Niên은 열사를 찾고 수습하고 신원을 확인하는 “500일 밤낮 작전”에서 호찌민시 국가대학교 과학자들이 포상을 받았다고 보도했고, VnExpress는 강사 팀이 레이더로 묘를 탐지한다는 기사를 냈다. 두 기사는 열사 수색 활동 전반을 다룰 뿐이며, 레 티 리엥과 직접 이어진다고 단정하지 않는다.